홍정욱이 작업은 조각과 회화의 중간 형태라고 할 수 있다.
드로잉에서
시작해 평면작업처럼 페인팅을 더하지만 결과물은 조각으로 완성한다.
점, 선, 면이
기본으로 형상을 이루는 미니멀한 이미지에 그의 작업은 사진에서 보여지는 것과 실물의 차이가 다소 크다.
조각이지만
묵직한 무게감이 느껴지지
않고,
눈에 띄는
그림처럼 색상이 두드러지지도 않기 때문에 그 이미지를 사진에 담기에는 한계가 있다. 홍정욱
작가의 작품은 전시장의 공간과 함께 실물로 봐야 비로소 진가를 발휘한다. 실제로 작가는 작업을 구상할 때 전시할 공간을 가장 많이
고민한다.
실의
교차로 이루어진 월 드로잉 작품처럼 공간과의 어울림뿐만 아니라 그 공간 자체가 캔버스가 되기 때문이다.
홍정욱 작가의 작업은 철저한 사전 계획이 필요한데 결과물이 입체이기 때문에 각도,
둘레,
부피,
무게 중
어느 하나라도 철저하게 계산하지 않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야 에스키스에서부터 실제 완성작이
만들어지는 과정 중에 생기는 오류를 취소화할 수 있다. 어찌 보면 매우 까다로운 방법론으로 접근하는 방식이지만 작가는 수년간 기계의
도움 없이 모든 부분을 스스로 만들어왔다. 손수 톱질을 해서 나무를 깎고 다듬어 작품을 제작한다.
기계로
깎아낸 칼 같은 모양새의 인위적인 느낌보다는 자연스러운 느낌으로 작품을 완성하고자 하는 이유에서이다.
그래서
작가는 도구를 활용할 뿐 기계를 사용하지 않는다. 손수 제작한 조형물이지만,
어느 한
곳 미숙하게 마감한 부분이 없고 깔끔하고 정갈한 느낌이다. 이런 부분 때문에 이성적인 작업으로 볼 수도 있지만,
작가는
이성을 이용하여 그 너머에 있는 감성을 표현하려는 의도로 작업을 한다.
특히나 이번 전시는 예전 작품보다 더욱 감성적인 부분이 부각되는 전시를 기획했는데,
인간이
지향하는 가장 완전한 상태나 모습, 즉 이데아(idea)가
중심적인 키워드다.
벽면의 작품을 보려고 가까이 다가서다 바닥에 있는 각형 조형물을 건드리게 되면 그
작품과 연결된 천장에 매달린 구조물이 흔들린다. 약간의 진동에도 흔들리는 이 인과관계는 손에 잡힐 듯 가까이 다가왔다가
멀어지는 현실과 이상 사이의 관계성을 말하려 한다. 구조물 아래의 거울은 조형물이 미묘한 긴장감을 증폭시키고
가시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역할을 한다. 전시장 벽면의 드로잉은 면을 칠하면 선이 보이고 선을 그리면 면으로 읽히는
성질을 이상과 현실에 비유한 작품이다.
이번 전시는 힘든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으면서도 그렇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현실에서 벗어나지 못한다고 좌절하기 보다는 조금은 무모하게 보이지만, 무모함을 가능으로 바꾸며 살아가기를 바라는 작가가 다른 사람뿐
아니라 본인 자신에게도 거는 최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