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r
이 전시는 공간을 수용하는 입체적 회화 혹은 확장된 회화의 논리를 제안해온 작가의 최근 작업 보고서입니다. 작가는 자신이 탐구하고 경험한 회화적 논리의 확장, 즉 전시 공간의 형태와 주변 조건 등 상황 전체를 그림의 화폭으로 설정하고, 평면회화의 표면에서 점, 선, 면, 색채 등 회화의 기본요소를 분리하여 캔버스 틀의 변형과 함께 해체하고 재구축하는 기본으로서의 회화를 연구하고 있습니다. 이는 회화의 본질이 세상과 자연의 원리, 인간과의 관계성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어느 한 방편에 귀속된 것이 아니라 서로 내포된 것이라는 예지叡智적 해석과 새로운 변화와 또 다른 균형의 가능성을 시각화하는 것입니다. 또한 지금, 여기의 서정적 상태狀態를 발견 가능하도록 오랜 시간동안 보이지 않는 이면裏面을 탐구하며, ‘진화’를 진행해온 자신의 미술행위가 관객과 만나서 서로 ‘신뢰’하게 되는 시․공간적 상상想像이기도합니다.
이번 전시는 우리시대 예술의 어느 지점과 삶의 어떤 상황에 대처하는 작가 자신의 ‘다름’에 관한 태도들을 조형화하려는 미술 설계를 사방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유리상자 공간에 담으려는 제안으로부터 시작됩니다. ‘~도(또한) ~아니다’라는 의미의 부정 논리합에서 빌려온 전시명, ‘nor’는 건물의 내부도, 외부도 아닌듯한 이곳, 유리상자 공간에서, 평면회화로부터 입체로 진화해온 자신의 조형적 탐색과 보이지 않는 것에 가치를 두는 ‘신념’을 통하여 미술을 행위하며 과정의 가치를 기억하려는 명제입니다. 이 명제는 ‘faith’와 ‘infill’, 이 두 가지의 설계를 또 다른 하나의 공간에 구현하는 시도에 기여합니다. 별을 닮은 200×200×200cm크기의 ‘faith’는 평면에서 공간 속 입체로 진화하는 회화의 절정처럼 보입니다. 시간차를 두고 여러 색상의 빛이 변화하며 은은하게 내뿜는 빛 덩어리 ‘faith’는 수공으로 정교하게 다듬은 정12면체 나무구조 틀을 바탕으로 합니다. 그 구조물 표면의 5각형 형태와 5각형 밑면에서 시작하여 또 다른 꼭지 점까지 그림을 그리듯 직선과 곡선으로 연결되어 솟은 삼각뿔 형태는 서로 자석으로 결합하여, 공학적인 이성의 형식 논리가 유기적인 감성의 빛으로 발산하는 상징처럼 천장에 매달려 있습니다. ‘신뢰’, ‘신념’, ‘바램’ 등 인간의 희망과 신앙을 대변하듯 유리상자 공간의 중심, 높은 곳에 위치하면서, 전시공간과 멀리 떨어진 주변의 거리에서도 밤하늘의 별처럼 관찰되도록 설계되었습니다. 그리고 바닥에는 ‘공간을 물들이다’는 의미의 3가지 ‘infill’(76×103×105cm, 76×124×47cm, 38×57×43cm)이 별을 따라 수행한 3개의 개체처럼 ‘faith’와 조응하듯 위치해있습니다. ‘infill’은 화면의 표면이 아니라 이면에 채색된 핑크와 연두 등 형광색이 자연스럽게 반사 빛을 발하는 현상에서 보이지 않는 것의 가치에 대한 작가의 감성이 스며있고, 평면 화면을 면분할하여 구성하듯 입체적인 선과 면으로 개체를 구축하면서 평면의 표면 내부로부터 곡선의 입체가 돌출되는 평면회화의 진화 과정을 엿볼 수 있게 합니다.
홍정욱은 ‘nor’ 상태처럼 자신의 작업을 통하여, 회화와 조각, 이성과 감성, 현상과 실체, 균형과 불안정 등을 제시하고, 우리가 공존하며 대면하는 불완전한 현실 시․공간에서 근원적인 세계의 균형을 획득하려는 에너지의 흐름을 과정의 가치와 함께 제안합니다. 적합한 작업 재료를 선택하여 자르고 갈아서 붙이고 입히는 수공의 작업 과정, 또 점과 선과 면을 연결하여 작은 단위 덩어리를 만들고, 이들을 결합하여 커다란 전체 덩어리를 만드는 과정, 그리고 그 위에 색채와 빛을 더하는 작가의 미술행위는 자신의 모든 에너지를 동원해서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또 다른 무엇을 찾는 창조적인 ‘놀이’에 다름 아닙니다.
눈앞에 펼쳐진 유리상자는 점, 선, 면에서 입체로 나아가며 조형의 본질을 찾아가는 작가의 미술행위와 그 이면에 충만하게 깃든 세계의 원리를 발견하고 참조하려는 태도이며, 인간 삶의 변화 과정에 관한 정서적 균형의 기대입니다. 가치 있는 과정으로서 다름의 경험을 기억하며 현재의 균형을 회복하려는 이번 유리상자는 미적 신념을 소통하려는 예술의 가치를 떠올리게 합니다.
글_ 정종구 큐레이터